7000억 원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몇 가지
7000억 원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몇 가지
  • 이병국
  • 승인 2018.12.18 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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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임단협 유예는 불법 등 '기본사항' 숙지 안돼
광주시, 협상주도력 없이 노사 양측 입장만 전달
현재 구도 타결돼도 '철밥통' 정부출자기관 불과

'관제시위' 앞세워 압박행태 '민주도시' 인상 먹칠
이 시장 협상단장 자임 이후 중국행 '진정성' 의심
현대차 임원 감원 인사 겹쳐 '동력' 급속저하 우려
광주형 일자리 성공 추진을 위한 시민 염원 서명부 전달 행사가 지난 10일 광주시청에서 열렸다. 광주광역시 제공
광주형 일자리 성공 추진을 위한 시민 염원 서명부 전달 행사가 지난 10일 광주시청에서 열렸다. 광주광역시 제공

 

△‘기본’도 모르는 광주시?

수조원 혹은 수십조원이 아닌 '겨우' 7000억 원이 투자되는, 주 44시간 연봉 3500만 원짜리 '광주형 일자리'가 원점으로 돌아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시가 자동차공장 사업주가 되고, 현대자동차(현대차)는 여러 투자자 중 한 명이자, 이 공장에 일감을 주는 발주처 역할을 하게 된다.

광주형 일자리 무산 위기에 대해 일각에서는 현대차나 노동계를 비난하지만, 이는 책임 떠넘기기일 뿐 광주시가 시작부터 관련 법 등 '기본사항'을 무시한 채 대응해, 무산 위기를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광주시는 8월 마무리, 찬바람 불기 전, 10월말 황금시간, 11월 15일 최종 마감, 12월 2일 국회 예산심의 시한 전 등 일정을 일방 제시한 뒤 무리한 속도전을 펼친 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 예정한 조인식을 하루 전 전격 취소하는 상황을 두 번째 연출했다.

광주시에 비난이 쏠리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사업 시작 전 필요한 관련 법규 검토 등 기초 조사 결여와 노사 양측을 왔다갔다하며 입장만 전달하는 데 그친 협상주도력 부족이 그 것.

광주시가 제시한 '35만 대 생산까지 임단협 유예'는 명백한 현행 법 위반이다.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참법) 12조는 '노사협의회는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회의를 개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임금협상은 매년, 단체협상은 격년으로 열린다.

현행 노동조합법과 근참법 등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광주시는 광역지방자치단체가 법을 어기는 행위를 하게 된다.

 

 

△35만대까지 임단협 유예?

광주시는 처음에 기본급·직무급·법정수당과 시간 외 근로를 포함한 총 연봉 3000만 원을 제시했다가 최저임금 위반 때문에 3500만 원으로 변경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이나 노동법, 관련 제도 등을 살피지 않았음이 역력하다.

이는 경영안정과 수익극대화를 노리며 "투자 타당성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현대차나 노동자 기본권을 요구하는 노동계가 수긍하기 어려운 제안이다.

민주노총은 광주형 일자리 연봉 3500만 원은 9200만 원인 기존 국내 자동차 회사 정규직 평균 임금과 너무 차이가 크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격차 축소에 역행하는 저임금 일자리라고 말한다.

한 노동계 인사는 "광주시와 현대차가 갖고 있는 가장 위험한 생각은 임금 등 노동조건 유지를 위해 단체협약을 원천 차단하려는 것"이라며 "이는 기본을 모르거나 무시한 채 법과 절차를 도외시하는 행태다"고 광주시의 협상 능력을 폄하했다.

현대차는 광주시가 수없이 입장을 번복했다고 '입장문'을 통해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6개월 여 동안 이어진 협상이 노사 양쪽에 '불신'만 남긴 형국이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최근 임원 20%에 퇴임을 통보하는 등 조직 군살빼기에 나서, 광주형 일자리 추진 동력이 급속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신설 자동차회사는 공기업?

공장이 설립되더라도 이 회사 법인격 문제가 발생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자동차 공장을 새로 만들어 현대차가 물량을 위탁하면 생산하는 방식을 골랐다. 노조 반발과 파견법 규제 때문에 우회로를 택한 셈이다.

신설법인 자기자본금(2800억 원) 중 광주시가 21%(590억 원), 현대차가 19%(530억 원)를 투자한다.

하지만 광주시가 21%를 출자하면 이 자동차공장은 정부출자기관이 된다.

나머지 1700억 원에 대해 광주시는 산업은행에 재무적투자자(FI) 참여를 요청한 상태다.

공장설립에 필요한 별도 4200억 원 대출도 상당 부분을 산업은행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산업은행은 "고려해 보겠다"는 원론 답변을 내놓았다.

가뜩이나 재정이 열악한 광주에 민간 투자가 적어 경쟁력 부실이 우려되는 '철밥통' 공기업이 신설돼, 어려울 때마다 세금을 퍼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제기는 근거다.

 

△'관제시위'로 압박?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하면 이는 현대차를 넘어 국내 제조업 구조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고임금·저생산성을 벗어날 시금석이며 일자리 나누기 기반인 '적정임금·적정근로'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시범사업 성격도 있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적극 지원을 약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직속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은 지난 9일 수적천석(水滴穿石·물방울이 돌을 뚫는다)이라는 사자성어를 내놓으며 뒤늦게 협상단장을 '자임'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는 15일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변명성 입장을 밝히고 광주세계수영대회 홍보를 위해 중국으로 3박4일(16~19일) 떠났다.

정해진 일정이 불가피하다 해도 일의 선후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시장은 "사업 중단이나 포기는 없다. 국민과 시대정신이 흔들리지 말고 담대하게 갈 길을 가라고 명령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광주에서는 10일 '완성차 공장 유치를 위한 범광주시민 결의대회'가 열렸다. 현대차와 노조가 '각성'하라는 것이다.

이는 '관제시위' 일종이며 상대를 압박해서 요구를 관철하려는 의도로 읽혀 '민주도시 광주'에 걸맞지 않는 '구태'라는 평가가 주류였다.

 

연 7만대 판매 못하면?

신설법인 주력 차종으로 검토되고 있는 소형 운동형다목적차량(SUV) 연 7만~10만 대 생산이 지속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현대차는 울산 제3공장에서 내년 1월부터 소형 SUV 연간 10만 대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이럴 경우 광주형 일자리 신설법인 완공시점인 2021년까지 해당 차종 수요가 최소 20만 대를 넘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소형 SUV 시장 규모는 14만 대였다.

국내 뿐 아니라 미국·중국 등 세계 전체 자동차 시장 수요가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다.

광주형 일자리는 자동차 수요가 줄어드는데다 수익성 지표까지 악화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생산 능력을 확대하려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이 번 기회에 실적위주 조급증을 버리고 자율 주행을 기반으로 하는 전기차나 수소차 등 미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하자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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