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이동련 할머니 별세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이동련 할머니 별세
  • 시민행동
  • 승인 2020.05.07 1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 파문 당사자
1944년 당시 사진. 뒷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고 이동련 할머니.
1944년 당시 사진. 뒷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고 이동련 할머니.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제공.

살아 생전 '그날'은 오지 않았다. 사죄하는 것이 그리도 어렵더란 말인가.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이동련 할머니가 별세했다.
2018년 11월 대법원 최종 승소 판결을 얻고도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지난 6일 하늘에 보름달 휘영청 밝고 별이 성성한 밤 11시 10분경.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에서 부고를 알렸다.

1930년에 태어난 고인은 나주초등학교 졸업 후 일본인 교장 권유로 1944년 5월 양금덕 할머니 등과 함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동원됐다.
1944년 12월 7일 아이치현 일대를 강타한 동남해(도난카이) 대지진 때 나주에서 같이 동원된 동료 최정례·김향남 씨는 무너지는 공장 건물더미에 목숨을 잃었다. 공포에 질리린 채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월급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1945년 10월 귀국.
고인은 일본에서 소송을 진행할 무렵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사회 시선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다.
일본 지원단체('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와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회장 이금주) 도움으로 1999년 3월 1일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나고야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8년 11월 11일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다.
고인은 2009년 일본 후생노동성 사회보험청이 소송 원고들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을 지급해 파문을 빚었던 사건 당사자 중 한 사람이다.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평소 언론 면담을 사양하고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녔던 고인은 한국에서 소송이 시작된 이후부터,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잘못을 알리는 공개 자리에 마스크를 벗고 참가하는 등 명예회복을 위해 적극 나섰다.
'시민모임' 등 지원으로 201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11월 29일 마침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간암으로 오랫동안 요양병원 생활을 해 오던 고인은 막상 대법원 승소 판결 소식을 현장에서 들을 수 없었고,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로부터 사죄 한마디 듣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미쓰비시를 상대로 승소 판결을 얻은 후 1년 6개월째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이 판결 이행을 거부하고 있는 사이, 지난해 1월 25일 원고 5명 중 한 사람이었던 김중곤 씨가 작고한 데 이어 고인도 생을 마쳤다.
유족으로는 2남 4녀가 있다.  빈소 구호전장례식장(광주 북구 서양로 144(전화 062-960-4444). 발인 5월 8일 오전 7시 30분. 장지 나주 선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